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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아프가니스탄 역사만화 낙서짤

요즘 많은 분들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계신듯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탈레반의 만행이 저질러지기 전의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나 문화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입니다.  


대충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관해 끄적인 이 낙서가 아주 조금이나마 그들의 기억과 문화를 이해하고, 탈레반에 맞서는 이들이 어떤 역사를 공유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B.C 250년경, 박트리아 그리스 왕국 시대》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정복 이후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지역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는 디아도코이(헬레니즘 제국의 방계 국가들) 왕조의 일종인 '박트리아'가 들어섰습니다. 그리스-마케도니아인들을 중심으로 소그드, 인도, 페르시아인들이 융합한 문화를 이룩한 이 나라는 이후 북인도 인근으로 움직여 '인도-그리스 왕국'으로 재편됩니다. 불교의 '밀린다왕문경' 또한 박트리아의 메난드로스 왕과 불교 스님들의 문답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후에도 불교의 영향력이 7~8세기까지 지속됩니다. 불교를 믿는 헬레니즘 그리스 국가라는 신기한 조합이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림을 설명하자면


1. 왼쪽의 두 병사는 각각 페르시아계와 소그드계 전사의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왼쪽의 페르시아계 전사는 마케도니아식 리넨 천갑과 리벳식으로 접합된 페르시아식 견갑, 완갑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모자는 '파우시아'라고 불리는 그리스식 베레모의 모습인데, 이는 현재까지도 아프간에서 즐겨 쓰이는 '파콜'의 선조입니다. 여러 동전과 부조에서 이러한 모자의 형태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러한 혼합양식은 훗날 여러 디아도코이 왕조 그리스인들에게서 자주 나타나게 됩니다. 소그드계 병사는 소그드 전통복장을 하고 날이 기형적으로 넓은 소그드식 단검을 지위의 상징으로 차고 있습니다.


2.  가운데 코린트식 투구를 쓴 그리스인은 당시로써는 구식이 되어가던 호플리타이 용병입니다.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의 총독들과 왕중왕들에게 용병으로 팔려갔고, 이는 코린트 지역 폴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 디아도코이 왕조들은 지배층인 마케도니아-그리스인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므로 여러 용병들과 상인, 그리스계 인구를 끌어모으려 우대하였습니다. 이 구식 코린트 투구를 쓴 용병도 그러할 것입니다. 당시 코린트 투구는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기원전 1세기까지는 사용되었던 유물이 있었을정도로 많이 퍼져있었습니다.


3.  가장 오른쪽의 병사는 전형적인 마케도니아 팔랑크스의 병사입니다. 호플리타이와 다르게 마케도니아인들은 창을 역수로 잡지 않고 방패를 왼팔에 맨 채 쌍수로 찔렀습니다. 더 긴 창을 운용하기 위해 갑옷은 청동 판갑에서 린넨, 미늘, 가죽등 더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투구는 박트리아와 인도-그리스 왕국의 금화에 주조된 문양과 형식을 그대로 따라 그렸으며, 마케도니아식입니다.


《A.D 300~500년경, 백훈족(에프탈)의 침입》

에프탈 혹은 읍달이라고 불리는 이 유목민족은 3~5세기경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유목제국의 주도민족이었습니다. 수많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봉신왕들이 에프탈인들의 먹잇감이 되어 쓰러졌으며, 파르티아인과 페르시아인들은 이들을 막기 위해 거대한 고르간 장성을 건설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중왕들은 이들의 풍습이 훈족과 비슷했다고 생각했기에 '백훈족'이라고도 불렀고, 이후 로마를 포함한 유럽에서 이들을 백훈족이라고 부르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1. 가장 왼쪽의 여전사는 에프탈인들이 묘사된 부조에서 흔히 보이는 뒤로 꺾인 가죽모자를 썼습니다. 페르시아 북부의 여러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여전사들도 흔히 존재하였습니다. 그 외 복장은 오랫동안 싸우며 부대낀 사산조 페르시아의 궁기병들을 참조했습니다. 그녀의 작고 튼튼한 조랑말은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를 누비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가운데 청년은 두 갈래로 머리를 땋았습니다. 그는 말을 타는데 걸리적거리지 않기 위해 검을 거의 수평으로 패용했고, 등자는 차지 않았습니다. 허리띠에 망토를 묶는 특이한 사용법은 트위터에서 고증 만화를 그리시는 빌헬름님의 그림을 참고했습니다.


3. 가장 오른쪽의 귀족 전사는 어깨부터 팔까지 내려오는 패턴 박공을 한 옷을 입었습니다. 어깨나 목에 활을 걸고 말을 타는 모습은 당시 기록이나 부조에 흔히 등장합니다.


그는 머리 두상이 기형적인데, 이는 에프탈 귀족들의 특징인 유아기 '편두'(어릴적에 아기머리를 틀에 넣어 뾰족하게 만드는 풍습)의 흔적입니다.



《120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전성기, 호레즘》

12~13세기의 호레즘은 동부 이슬람국가들의 패권을 쥔 강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과 이란 중~동부, 트란스옥시아나를 장악하였으며, 거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3세기 성장한 몽골의 말발굽에 완전히 짓밟혀버렸으며 이후 다시는 옛 영광을 되찾을정도로 번영하지 못합니다.


1. 가장 오른쪽의 병사는 페르시아풍 투구와 튀르크식 갑주를 입은 굴람 노예병입니다. 호라즘은 수만 단위의 굴람 중갑병을 운영하였으며, 훗날 몽골과의 싸움에서도 엄청난 수의 노예병을 동원했습니다. 그의 투구는 면갑이 탈착식으로 달려 있고 조끼식의 경번갑으로 보강되었습니다.


입은 바지의 패턴은 튀르크식으로, 황소의 뿔을 의미하는 힘의 상징을 나타냅니다. 저런 U자무늬 패턴이나 꽃무늬를 튀르크인들은 좋아했습니다.


2. 가운데의 병사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토착 하자리인 병사입니다. 언월도를 들었고 털모자를 쓴걸 제외하면 고증은 오스프리의 그림을 따랐습니다.  허리띠 형식은 더 동쪽과 유사합니다.


3. 가장 왼쪽의 네명은 호레즘 동쪽에서 온 나이만족과 케레이트족 용병들입니다. 무릎을 꿇은 병사는 거란 기록화에서 흔히 보이는 변발과, 몽골식 찰갑을 입었고, 서있는 병사는 몽골 유목민들의 털모자와 좌임(왼쪽에서 옷깃이 겹치는) 옷을 입은 채 십자가 묵주를 들고 있습니다.


나이만과 케레이트족은 호레즘에서 오랫동안 용병풀로 이용되었으며, 소그드인들의 선교로 인해 네스토리우스파 동방 기독교를 숭배하였습니다.


십자가 무늬의 겉옷과 이상한 삿갓을 쓴 이는 토착화된 네스토리우스파 사제의 모습입니다. 이는 당시 소그드인 경교 사제, 혹은 마니교 사제를 묘사했다고 여겨진 아래의 중국 기록화를 채용해서 그려보았습니다.


나이만과 케레이트, 소그드족의 기독교문화는 몽골 침공 이후에도 융성하나, 곧이은 실크로드의 이슬람화와 흑사병 대유행에 의해 전례 전파가 끊기며 몰락합니다.

-경교, 혹은 명교의 사제로 알려진 그림-


《19세기 제국의 무덤, 아프간 아미르국》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혼란은 영국의 식민이 시작된 18~19세기부터 이어졌습니다. 영국은 북인도의 시크교 왕국을 무너트리면서 조금씩 아프간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프간의 아미르 도스트 무함마드가 찬탈자라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영국은 약 2년간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지만, 카불에서 시작된 대규모 민중봉기가 도스트 무함마드의 아들 악바르의 지도하에 거대해지며 전쟁으로 발전합니다.


악바르 칸은 잔혹한 전술로 영국을 괴롭혔고, 영국의 민간인들의 탈출과 영국군의 호송을 막지 않겠다는 거짓 약속으로 영국을 안심시킨 채 대규모 기습에 나서 영국군 4500명과 영국인 민간인 12000명을 사살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부족들이 산악지대에서의 게릴라전으로 영국인들을 축출하는 오랜 싸움을 벌였습니다.


1. 왼쪽의 소년은 자기 키 크기의 머스킷, '제자일'을 들고있습니다. 제자일은 영국군 소총 브라운 베스를 분해, 재조립한 무기였습니다. 그렇기에 단일한 규격은 없었지만, 원본보다 훨씬 길게 마개조한 총열과 양각대, 심지어는 직접 대장간에서 판 원시적인 강선까지 있는 경우도 있어 원본인 영국군 제식소총보다 사거리가 길었습니다.


이 총은 너무도 유용하게 쓰인 나머지 전장식 머스킷인데도 불구하고 21세기 초의 아프간 내전에서도 사용되는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늙은 무자헤딘 전사가 이 수백년된 제자일로 탈레반 침략자들의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내고 있을지도 모를 터입니다.


2. 가운데 사람은 타지크족 전사입니다. 소그드계의 혈통이 혼합된 타지크족은 파슈툰 전사들에게 말 무역을 하며 성장해 아프간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들의 특징인 두꺼운 단검과 허리띠, 파콜을 쓰고 있습니다.


3. 오른쪽 사람은 파슈툰 귀족입니다. 당시 남았던 파슈툰 귀족들의 사진이나 기록화를 참고하였으며, 북인도인들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듯한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쓴 관은 보석으로 장식되어있고 당시 높은 지위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판지시르의 사자, 자유 투사 아흐마드 샤 마수드》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신 아흐마드 샤 마수드 사령관님을 조악한 손그림으로나마 추모해보려 합니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 사령관은 젊은 시절에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공산독재에 맞서, 장년이 되어서는 탈레반의 광신에 맞서 일생을 바친 무자헤딘의 사령관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유력 부족중 하나인 타지크족 출신이었지만, 부족과 종교, 사상을 넘어 차별 없는 행보를 보였으며, 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미성년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막기 위해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대되는것을 두려워한 탈레반은, 2001년 폭탄 테러로 그를 암살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이어받은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 2세 또한 현재 판지시르의 반 탈레반 저항세력을 지도하며 꺼져가는 아프가니스탄의 자유세력에게 마지막 잔불을 비추고 있습니다.


탈레반에게 자유를 빼앗긴 굴욕적인 삶보다 숭고한 투쟁 속의 죽음을 택한 마수드 사령관님과 모든 무자헤딘, 정부군, 저항세력 투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천국에 계신 선지자 무함마드께서는 광신도 탈레반이 아닌 당신들의 영혼을 반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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