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게네스 아크리타스는 약 9~11세기경의 아나톨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비잔티움 서사시입니다. 이미 12세기경에는 비잔티움 궁정의 시인들이 마누일 1세 콤니노스 황제를 칭송하며 ‘당신은 진정 두 번째 아크리타스입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널리 퍼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국에는 전반적인 이야기를 번역해놓은 글이 없기에 조야한 영어실력으로 JOHN MAVROGORDATO의 논문 'Digenes Akrites' 중 서사시의 내용을 정리한 부분을 발번역해 보았습니다. 부디 제 바보같은 영어실력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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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로마인들의 땅(Romania) 한가운데 카파도키아에는 안드로니코스 두카스(혹은 아론 두카스)라는 대공(Strategos)이 살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안나 킨나모스(혹은 Magastrean 가문) 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다섯 아들이 있었지만, 막내로 딸이 가지고 싶었지요. 그들은 구주 그리스도께 간절히 바라고 바란 끝에 막내딸 이레네를 얻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어느날, 마녀(혹은 점쟁이)가 두카스 대공의 집에 찾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딸은 이교도 에미르에게 끌려가게 될 운명입니다.’
두카스 대공은 그 예언을 듣고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리하여 딸 이레네가 7살이 되던 해, 그는 높은 탑을 짓고 수많은 경비병을 배치하여 이레네를 가두어놓았고, 그녀는 오직 유모들과 가끔 찾아온 가족들만을 만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전혀 모른 채 자라났지요.
그녀는 그렇게 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미모는 자라나면서 계속 출중해져 하늘의 달과도 같이 빛나게 되었습니다. 이레네가 12살이 되던 해, 그녀는 자신이 갇힌 탑의 책에 있는 삽화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삽화에는 작은 소년이 연인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유스타티우스 마크렘볼리티스의 Hysmine and Hysminias에 수록된 삽화였다고 합니다. 이거 짧게 번역된거 봤는데 매우 야함) 그녀의 유모들은 황급히 그 책을 치워버리고는 이레네에게 경고했습니다.
‘영애님, 이 삽화의 소년은 강력하고 사악한 힘을 상징한답니다. 그의 손에 들린 화살은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힘을 지녔지요, 아아. 그는 진정 소녀를 노예로 만드는 자이자 정복자입니다. 그의 손에 들린 깃펜과 종이는 항상 새로운 희생양을 적어내려가지요.’
이레네는 빙긋 웃으며 유모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유모! 걱정마세요. 저 사악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저는 그 불꽃의 화살도, 그의 권능도, 그가 데리고 다니는 짐승(사자)도, 그가 들고 다니는 깃펜과 종이의 힘도 두렵지 않아요.’
위대한 사랑(아마 에로스를 의미하는 듯)은 자신의 힘을 당돌하게 비웃는 이레네의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고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날 밤, 위대한 사랑은 이레네의 꿈속에 직접 나타났지요. 이레네는 처음 느껴보는 ‘사랑(에로스)’의 감정 때문에 공포에 질렸습니다.
‘제발... 제게 자비를 내려주세요....’
이레네는 위대한 사랑에게 자비를 부탁하며 울며 불며 빌었습니다.
그녀는 잠에서 깨자 마자 엉엉 울며 유모들에게 달려가 안겼습니다.
<논문 원문에서 ‘이 이후는 최소 15세기에 추가된 운율로 이레네의 첫 사랑(아무래도 대상이 아니라 성적인 에로스를 의미하는 듯)에 대한 경험과 그녀의 고귀함을 묘사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적으며 넘김, 원본과 가까운 판본에서는 그냥 ’그녀의 마음 속에 사랑의 불길이 붙기 시작했습니다.‘만 있는 듯>
그리고 얼마 뒤, 안드로니코스 두카스는 원정길에 떠났고, 그 때를 틈타 이레네와 유모들은 갑갑한 탑을 빠져나와 소풍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필 카파도키아에는 무수르(Mousour)라는 시리아의 왕자이자 에미르인 자가 두카스 대공의 카파도키아 영지를 습격하러 찾아왔습니다. 무수르는 이레네와 어린 유모들을 납치하였습니다.
그녀의 다섯 오빠들은 막내 여동생이 납치된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였습니다. 다섯 오빠들은 어머니 안나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는 스스로를 저주하며 맹세하였습니다.
’마녀(점쟁이)의 저주대로 여동생이 에미르에게 잡혀갔으니 우리 다섯은 그녀를 구하지 못한다면 살아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중무장한 채 에미르 무수르를 추격했고, 결국 에미르의 캠프에 당도했습니다. 다섯 아들중 장남이자 뛰어난 전사였던 콘스탄티누스는 에미르 무수르에게 1대1 대결을 신청하였고, 치열한 혈전 끝에 에미르 무수르를 항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졌소, 패배의 의미로 내 반지를 가져가시오, 당신의 여동생은 내 캠프에 있으니 가서 데려가시오...!‘
다섯 형제는 에미르 무수르와 그의 부하들이 머물던 막사를 샅샅히 뒤졌지만, 이레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 아랍인이 캠프 뒤편의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들의 막사 뒤편에 큰 구덩이가 있고, 많은 소녀들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아마 당신의 여동생은 죽은 듯 싶소만....‘
아랍인이 가르쳐준 데로, 에미르의 막사 뒤편에는 큰 구덩이가 있었고, 그곳에는 이레네의 유모들이었던 로마인 소녀들의 시체가 토막쳐진 채로 이리저리 던져져 있었습니다. 다섯 형제들은 미친 듯이 시체를 뒤져가며 이레네의 흔적을 찾았지만, 이레네로 보이는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섯 형제는 다시금 에미르를 겁박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누구이며, 우리의 여동생은 어디있는가...!‘
에미르는 그들에게 답했습니다.
’나는 크리소헤르페스(Chrysoherpes)와 스파티아(혹은 판티아)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삼촌 무함마단께서 나를 거두어 키우셨다. 나의 조부는 암브론(Ambron)이시며 또 다른 삼촌은 카로에스(Karoes)이시다...! 내 한평생 시리아 전역을 평정하며 단 한 차례도 패배를 겪은 적이 없었다..... 오직 너희 여동생에게만 빼고 말이다.. 너희 여동생의 미모가 나를 항복시켰다. 너희의 여동생은 안전하다. 만일 너희가 내게 여동생을 허락한다면 나와 내 모든 백성들은 로마니아에 귀부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겠다.‘
(논문의 저자는 에미르 무수르의 혈통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파울라키파 이단들의 알려진 지도자들과 유사하다고 적고 있다.)
다섯 형제는 무수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카파도키아로 돌아와 어머니인 스트라테기사 안나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어머니 또한 에미르 무수르를 환영하였습니다. 무수르가 정교회 세례를 받고, 이레네와 정식으로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첫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바실리오스 디게네스 아크리타스‘라고 지었습니다.
(디게네스라는 뜻 자체가 ’두 민족의 혼혈‘이라고 합니다. 디게네스는 이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
시리아에 있던 무수르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무수르의 아버지 크리소헤르페스는 로마의 대적이자, 로마인들에게 포위되었을때도 평화조약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여 갈가리 찢겨죽은 자였으며, 그의 삼촌들은 스미르나와 이코니온까지 약탈한 적이 있는 위대한 무슬림 전사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무수르는 시리아에 두고 온 하렘에 수 많은 첩들과 아이들까지 가지고 있기도 했고요
’내 아들이 돼지고기나 쳐먹는 년의 꾀임에 넘어가 배교하다니...!‘(진짜 이런식으로 적혀있음)
무수르의 어머니는 가장 빠른 파발에게 시켜 카파도키아의 두카스 궁전 ’레우코페트라‘(하얀 돌의 궁전)으로 편지를 보내 아들에게 돌아올 것을 간청했습니다. 무수르는 이레네와 그의 다섯 오빠들에게 시리아에 어머니를 뵈러 갈 것이며,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맹세한 뒤 카파도키아를 떠났습니다. 다섯 오빠들은 이레네의 명예가 더럽혀질까 걱정하였지만, 무수르를 믿어보자는 이레네의 설득에 그를 보내주었지요.
(그는 시리아와 카파도키아를 오가며 자신의 휘하 병사들을 재촉하는 시를 읊는데, 그 내용이 멜로코피아와 카파도키아, 하리스, 멜리테네에서 자신들이 로마군을 이겼던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함, 그리고 논문에 따르면 동시기에 언급된 곳에 대한 어느정도의 역사적 사실일것으로 추정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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