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르는 시리아로 가는 길에 사자를 잡아 이빨과 오른 발톱으로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이레네에게 돌아간 뒤 태어날 아들에게 줄 선물이었지요. 그는 이후 오스로에네의 수도 에데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뒤의 이야기는 판본에 따라 갈린다고 합니다.
1/ 대부분의 판본은 에미르 무수르가 어머니와 가신들을 설득하였고, 어머니와 가신들은 그의 설득에 응하여 동로마에 귀부하였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2/그러나 일부 판본은 동로마 소녀와 결혼할 것이며 자신은 이미 세례를 받았다는 에미르의 말에 어머니가 반박하며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위대한 선지자의 무덤과 같은 경이를 가지고 있느냐? 그들과 우리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칠흑같은 밤, 사자와 곰과 같은 맹수들, 늑대와 양처럼 서로를 다치게 만들 수 밖에 없느니라.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서로를 다치게 할 수밖에 없다. 위대한 아시리아의 왕 나아만의 두건(논문에서는 이것을 예수가 그려졌다는 위대한 에데사의 성화를 의미하는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함) 이 보여준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이집트의 위대한 군주들과 네 운명 모두를 버리고 겨우 그리스인 계집에게 넘어갈 것이란 말이냐?‘
그러나 어머니의 반대에도(혹은 적극적인 찬성) 불구하고 에미르는 어머니와 가신들을 모두 이끌고 약속대로 카파도키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는 이미 디게니스 아크리타스가 태어난 뒤었고, 에미르는 처음으로 아들을 보며 환호했습니다.
’나의 작은 매야..! 어서 어서 자라려무나! 어서 자라서 너의 큰 날개를 활짝 펴고 함께 메추라기를 잡자꾸나...!‘
이레네와 에미르는 아들을 진짜 이름인 바실리오스가 아닌 ’디게니스‘라고 더 불렀는데, 이는 아랍인과 로마인의 평화로운 혼혈로 태어난 아이라는 애칭이었습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디게니스는 어릴적부터 총명하고 강인했습니다. 그는 겨우 세 살때부터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제대로 걷기 시작할 때부터 무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디게니스는 열두살이 되어서 첫 사냥에 나섰습니다. 아버지 에미르와 삼촌 콘스탄티누스는 그가 첫 사냥을 나서는 것을 걱정하여 뒤따라나섰지만, 소년이 그날 혼자서 곰 두 마리를 사냥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유롭게 사냥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발은 너무도 빨라서 달리는 사슴을 뛰어가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정도였고, 사자를 검으로 베어죽일 정도로 능숙하게 무예를 다룰 정도였지요.
그는 아버지 에미르, 삼촌 콘스탄티누스와 함께 냇가에서 목욕하며 사냥감에서 튄 피를 닦아내었습니다. 삼촌과 아버지는 그의 무예를 칭찬하며 금으로 자수가 놓아진 비단 옷을 선물하였습니다. 디게니스는 녹색 천으로 만든 마갑과, 작은 황금 종, 터키옥으로 장식된 마구를 단 백마를 타고 어머니께 돌아갔습니다. 백마는 사나웠지만, 마치 디게니스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일심동체가 되어 그를 태웠습니다. 아버지 에미르는 자신의 아들이 장성해감을 행복하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늙어감을 느끼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디게니스는 성인(아마 비잔티움의 성인 기준인 16세)가 된 뒤, 스스로 국경을 지키는 방랑 전사가 되고 싶어하였습니다.(아크리티, 아크리타스라는 뜻이 비잔티움에서 국경경비대라는 뜻으로 쓰였음) 그는 첫 모험을 산적들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정하고 산적(Apelatai, 메이스를 든 자들, 당시 비잔티움의 산적들은 메이스를 많이 사용했다고 함)들을 향해 나섰습니다.
디게니스는 인적 없는 산속으로 향하는 물지게꾼을 보고는, 생각했습니다.
’저런 산중에 저만큼의 물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산적 진채겠구나..!‘
그는 평범한 행인으로 위장하여 물지게꾼과 함께 산적 진채로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산적두목 필로파포스가 짐승 가죽을 두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디게니스는 필로파포스에게 산적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산적 두목 필로파포스는 껄껄 웃으며 답했습니다.
’애송아, 너가 우리 산적단에 들어오고 싶다면 이 메이스를 들고 13일간 잠을 자지 않은 채 우리 산채의 경비를 서야 한다. 그걸 마치고 쉬지도 않은 채 사자를 잡아 가죽을 둘러야 하며, 그 다음에는 귀족나으리들이 자신의 신부와 함께 행차할 때 어여쁜 신부님을 잡아다 몸값까지 받아내야 하지. 이래야 너 또한 아펠라타이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네놈 따위가 할 수 있겠느냐?‘
디게니스는 그 소리를 듣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이미 열두살 때 사자를 잡아본 몸입니다. 말씀하신 것들은 너무나 쉬워서 설명할 가치도 없겠네요. 반대로 여쭙겠습니다. 당신은 낮게 날아가는 새를 뜀뛰기를 해서 잡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뛰어가는 토끼와 사슴을 맨손으로 잡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런 것도 해본 적이 없으시면서 저를 어찌 평가하시려 하십니까?’
필로파포스는 디게니스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놈이로다...! 우리와 함께 식사하자꾸나...!’
디게니스의 당돌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식사에 초대받은 뒤, 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산적들에게 지껄였습니다.
‘너희 모두 나에게 덤벼보아라...! 어떤 무기를 써도 좋다...! 나는 이 막대기 하나로 너희를 상대해주마...!’
산적들은 호기롭게 그에게 덤볐지만, 디게니스는 막대기 하나로 모든 산적들을 때려눕혔습니다. 그리곤 그들의 무기를 거두어 필로파포스의 발치 앞에 던졌습니다.
‘이제 마음에 드시오....?’
그제서야 필로파포스는 디게니스의 용력을 눈치채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당신같은 용사를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저와 제 부하들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디게니스는 필리파포스와 젊은이들을 이끌고 카파도키아로 돌아왔습니다.
(논문은 이것을 ‘절제된 용기’가 ‘무법자들의 폭력’을 이긴다는 비잔티움식 정의론을 보여주는것일 수 있다고 이야기함)
여기서 1부가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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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로 돌아온 디게니스는, 동로마의 군사령관 두카스(디게니스도 외가가 두카스이긴 합니다만, 당시 두카스 족벌이 막 세력을 뻗히던 때라 먼 친척정도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두카스 가문이 잔뜩 등장할겁니다..)의 어여쁜 딸 ‘에브도키아 두카스’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디게니스는 항상 말을 타고 에브도키아 두카스의 집 아래에 몰래 찾아가 창가를 향해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러자 에브도키아는 반지 하나와 함께 디게니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오, 낭군님, 저는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저희 아버지는 잔혹한 광인이시고, 제게 청혼하려는 모든 사람을 해치려 들기 때문이지요. 구혼자가 얼마나 잘생기고 선하며, 용기의 덕목을 가진 이인지는 제 아버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어서 돌아가세요...’
디게니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진 가장 빠른 말을 가지고 밤중에 기다리세요, 저와 함께 카파도키아로 도망칩시다..!’
디게니스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야음을 틈타 에브도키아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에우도키아는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디게니스는 에브도키아에게 소릴 질렀고, 에브도키아의 아버지와 가신들은 그 소리를 듣고 디게니스를 뒤쫒았습니다. 에브도키아는 말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방에서 디게니스를 향해 뛰었습니다. 간신히 떨어지는 에브도키아를 받아낸 디게니스는 말을 달렸지만, 두명을 태운 말은 예전만큼 빠르게 달리지 못했지요.
두카스 장군의 식솔인 ‘사라센인 사우달레스’(당시 비잔티움인들은 튀르크인들을 용병으로 기용하긴 했지만, 사우달레스는 비잔틴식 이름입니다. 논문의 저자는 이 ‘사우달레스’가 890년대 당시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장군의 부관이었던 사우달레스를 의미하는 듯 하다고 해석했습니다.)가 디게니스에게 외쳤습니다.
‘이 보쌈꾼아...! 내 주군의 아이를 납치해 갈수는 없다..! 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거라!’
디게니스는 사우달레스와의 혈전 끝에 그를 고꾸라트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우달레스는 피를 뿌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두카스 장군의 세 아들과 두카스 장군 본인이 그에게 싸움을 걸자, 그는 창으로 세 아들의 말을 쓰러트려 큰 부상 없이 그들을 제압했고, 두카스 장군의 손을 화살로 쏘아 더 이상 쫒아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두카스 장군님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지금 그 부상 덕에 최고의 사위를 얻으신 겁니다!’
그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두카스 장군에게 외치고는 말을 달려 도망쳤습니다. 그는 카파도키아로 가서 그 다음날 바로 에브도키아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디게니스는 자신의 아내에게 ‘코레’라는 귀여운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지요. 두카스 장군은 디게니스의 이런 발칙한 행동이 오히려 크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혼식 삼 개월째(네, 이들은 결혼식을 3개월이나 벌였습니다.) 두카스 장군은 카파도키아로 찾아와 딸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는 디게니스의 무예를 칭찬하고는 열두명의 거세된 미소년과, 계집종들, 길들인 사자와 표범 각각 한 마리, 매 한 마리, 성 테오도라의 모습이 담긴 이콘 두 개와 가문의 보검이었던 호스로의 명검을 결혼식 선물로 쥐어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따로 집을 짓지 않고 동로마제국과 아랍인들의 국경에 작은 천막 세 개를 지어 살았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과 사랑하는 아내 코레를 위한 것이었고 하나는 계집종들이 사는 거처, 하나는 그의 병사들이 머무는 거쳐였습니다. 그가 재력이 없어서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는 초원을 혼자 거니는 것을 좋아하였기에 초원에서 지내고 싶어하였던 것이었죠. 그는 이후로도 사람들을 괴롭히는 용병대나 산적들, 유목민들을 때려잡거나 훈계하며 국경을 지켰고, 사람들은 조금씩 그를 ‘아크리티스’, 즉 ‘국경 지키는 자’로 알게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문은 곧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 폐하(판본에 따라 황제가 다른데, 로마노스 레페카노스라는 설, 바실리오스 1세라는 설 니케포로스라는 설 등), 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천막을 치고 방랑하며 국경의 약자들을 지켜준다는 용사의 소문을 들은 황제는 그를 만나기 위해 카파도키아의 두카스(장인어른 두카스가 아닌 디게니스의 외가 두카스) 영지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디게니스가 카파도키아 영지가 아닌 유프라테스 국경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디게니스에게 전갈을 보내 곧 그를 만나러 큰 군대를 끌고 갈 것이니 놀라지 말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디게니스는 황제폐하에게 답신을 보냈습니다.
‘지고하신 황제 폐하, 폐하께서 저를 만나고자 하신다면 적은 수행원들만 데려오시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큰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유프라테스까지 향한다면 군인들은 저 때문에 힘든 행군을 했다고 저를 미워할 것이며, 군대가 지나간 곳의 시민들은 군대를 부양하느라 고생을 겪을 것이며, 저를 만난 다음에는 겨우 꼬맹이 때문에 먼 길을 걸었다고 저를 얕잡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군대를 데려오셔도 상관없지만, 만일 군인들이 저를 그런 식으로 얕잡아본다면 우둔하고 성미가 더러운 당신의 미천한 종인 저 디게니스는 그 군인들을 때려눕히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황제는 그의 패기와 혜안에 감복하며 단 백명의 호위대만을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향했습니다. 디게니스는 열과 성을 다해 황제를 융숭히 맞이하였습니다.
‘군대와 백성들에 관한 자네의 혜안에 감복했네, 혹시 내게 바라는 점이 없는가? 내 뭐든 내려줌세.’
황제의 말이 끝나자 디게네스는 국경 지대의 이교도들과 이단들을 흩어놓아 다스리기 쉽게 하는 법과, 학문을 융성히 하여 정교회 신앙을 퍼트릴 방법, 황제가 가져야할 덕목과 제국이 갖추어야 할 의무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황제는 그의 말에 감복하여 두카스 가문에게서 압류했던 모든 영지와 보물을 디게네스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서사시 본문에 적혀있지는 않지만, 이 서사시가 적힐 시점에 두카스 가문이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며, 디게네스의 외가가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카파도키아의 별장에 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외할아버지 시기의 반란미수때문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으로 이 시기가 890년대에서 900년대 초의 특정 시기임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가 군대를 이끌고 떠나 에미르에게 딸을 납치당했던 시기가 바로 외할아버지 두카스가 반란군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을 공성하던 시기였던 것)
디게니스는 야생마와 사자를 맨손으로 들어올리는 묘기를 보여 황제를 기쁘게 해 주었고, (이는 바실리오스 1세가 아직 황제에 오르기 전 미하일 3세에게 보여준 묘기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는 디게니스가 유프라테스 국경의 수호자임을 선포하여, 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디게니스 바실리오스 아크리티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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